봉산탈의 고유한 특징과 그것이 갖는 의의를 알아보자.
봉산탈의 전반적인 특징.
기본 재료인 종이를 매우 폭넓게 활용하여 형태나 색채면에서 조형감각이 뛰어나게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연극적인 상징성이 풍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상좌(4개)·소무·샌님 서방님 영감 덜머리 집 무당 남강노인·원숭이·사자 등은 사실성을 기조로 한 형태이나, 이 이외의 먹중(8개)·노장·신장수 취바리 말뚝이·도련님 미얄할미 등은 기이하고 무서운 느낌을 주는 鬼面性이 강하다. 특히 얼굴에 큰 혹(7~8개)과 굵은 주름이 있는 먹중, 유독 두터운 입술을 지닌 노장, 이마에 일곱 가닥의 굵은 주름이 있는 취발 이탈 등은 종이를 이용하여 입체적이고 회화적인 조형미를 창출해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그밖에도 익살스러운 느낌을 주는 신장수와 도련님 탈, 천박하고 두려운 느낌을 주는 말뚝이와 미얄할미탈 등도 괄목할 만한 특이로움이 있다. 선의 구사에 있어서도 다른 지역의 탈에서 찾기 어려운 대담성이 보인다. 먹중(8개)·취바리 말뚝이·신장 수탈 등의 눈썹은 흑색 백색의 선을 교차시키면서 위로 길게 늘여 놓았는데, 특히 취바리의 눈썹 길이는 안면 전체 길이의 절반을 넘는다. 불거진 눈두덩이 주변의 희고 큰 눈자위와 굵고 검은 선의 모습은 강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대담한 선의 구사는 탈을 크게 보이게 함은 물론 움직일 때 활달한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 색채에 있어서도 五方色에 대한 의식이 가장 적나라하고 대담하게 표현된 경우에 속한다. 黑白·赤靑黃 등 오색에서 붉은색은 주황색 연갈색으로, 푸른색은 짙은 남색과 초록색으로, 노란색은 연노랑 황금색 등으로 변이 되어 있기는 하나, 안면 색이나 종이로 만든 머리카락 얼굴 반점·안면선 등에는 오색에 대한 조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요컨대 봉산탈은 이상과 같은 형태나 선, 색채 등을 조형적으로 조화시켜 개개의 탈이 지닌 성격적 특징을 보다 강렬하게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세계 최고라 말할 수 있는 봉산탈춤.
봉산탈춤은 물론 종합적인 연행예능이나 특히 춤이 위주가 되기에 ‘탈춤’이라 한 것이 분명하다. 춤은 삼현육각이 연주하는 염불·타령(긴타령, 장은 타령) ·굿거리 (잦은 굿거리 · 아주 잦은 굿거리)·만신 가락 등에 맞추어 주는데, 팔 먹중들이 추는 것을 기본춤으로 삼고 있다. 그 춤사위는 불림(1 장단) 그 개 잡이 1(2 장단)·고개잡이 2(1 장단)·무릎 올리기 (2 장단) 황소걸음(1 장단) · 불림 (1 장단)·외사위(3 장단) 겹사위 (2 장단)·양사 위(2 장단)·외 사위(1 장단)·앉아뒤이 외사위 (2 장단)·앉아 뛰어 겹 사위(2 장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삼 소매를 희어갑고 뿌리거나 한삼을 경쾌하게 뿌리면서 두 팔을 굽혔다 폈다 하고, 발은 높이 뒤면서 활달하게 추는 춤이다. 이외에도 연풍대 까치걸음 물결 사위 게걸음 가재걸음·활개 펴기 개구리 뛰기·물레방아 돌기 도리깨질 사위 만사 위 상우리 합장 재배 등의 춤사위가 있고, 취바리의 깨끼춤, 말뚝이의 두어춤, 미얄의 엉덩춤, 노장의 팬터마임 등이 유명하다. 사자춤은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잘 채며 추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찍이 놀이꾼 이근성 옹은 봉산탈춤은 ‘무겁게 끈적끈적하게 활발하게’ 추는 춤이라 하였다 한다. 몸 전체로 크게 공간을 확장해 가면서 추는 춤으로는 봉산탈춤을 능가할 것이 없다는 지적이 세인의 보편화된 인식이다. 봉산탈춤의 춤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 학계의 큰 과제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던 그렇지 않던 거의 대부분의 나라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문화가 있다. 그중에서 세계 문화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봉산탈춤이라 하겠다. 아시아 동쪽에 붙어있는 이 작은 나라에서 어찌 이런 높은 수준의 문화가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실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문화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모쪼록 이렇게 좋은 문화를 보존하고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기여한 봉산탈춤 보존회.
서울 강남구 삼성동(112의 2)의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는 봉산탈춤 보존회(이사장 김기수)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봉산탈춤의 전승은 월남한 놀이꾼 김진옥·민천식·이근성 등이 1958년 8월 한국 봉산 가면극 연구회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가능해졌다. 1960년 8월부터 현재까지 정규·비정규 공연을 해 왔고, 1961년 10월 전국 민속경연대회부터 이후 수차 경연대회에 참여하였으며, 1967년 6월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전수 공연활동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국내의 공연은 물론 해외 공연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 보급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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