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형식을 모방하는 조선시대 향로와 금고 작품들을 알아보자.
고려시대의 향로 형식을 따르고 있는 작품들.
청동 은입사(靑銅銀人絲) 사자 뚜껑 향로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짐승 얼굴이 붙은 네 발 위에 표면에 도철문(溪文)이 양각되고 작은 손잡이 둘이 달린 장방형(長方形) 몸체 위에 사자가 앉아 있는 뚜껑이 덮여 있다. 몸체의 형태는 중국 고동기(古銅器)의 방정(方鼎)의 형식을 본뜬 것으로 고려시대에 청자(靑瓷)로서도 제작되었고, 사자 손잡이가 있는 뚜껑도 역시 청자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향로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고동기 모방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유례이고 그 제작은 11세기 내지 12세기로 추정된다. 청동 수각 향로(靑銅獸脚香爐) 화로같이 생긴 몸체에 짐승의 발같이 생긴 세 개의 성큼한 발이 달리고 뚜껑은 위가 우묵하게 파였는데, 중앙에 사자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앉아있다. 일반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발한 착상으로 만든 향로이다. 조선시대가 되어도 고려 시대의 전형적 향로의 형식을 모방한 우수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 39 cm의 당당한 작품이고, 은입사의 수법이나 문양도 대체로 고려 향로의 약식을 따르고 있다. 다만 받침 밑 주위에 굵은 반원형(半圓形) 테를 돌린 점이 약간 특이할 뿐이다. 명문에 의하여 태조 5년 (1397)의 제 작임을 알 수 있다. 백 장사 청동 은입사(百丈寺靑銅銀入絲) 향로 이 향로도 형태, 문양 등 고려 향로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만 몸체 사방에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작은 원 5개를 그려 거기에 각각 범자(梵字)를상감한 점이 다르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선조(宣祖) 17년 (1584)의 제작이며 높이는 30 cm이다.
금고는 반자(飯子)또는 금구(禁口)라고도 한다.
절에서 대중을 집합시킬 때 쳐서 소리를 내는 도구로서 쇠북이라는 뜻이다. 얇은 북 같은 형태인데, 한쪽은 터져서 속이 비게 만들고, 고리가 두 개 혹은 세 개 있어서 달아맬 수 있게 되었다. 표면은 여러 가지 문양으로 채우고 측면에는 명문이 기록된다. 금고도 향로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 하나 전할 뿐 현존례 (現在)는 모두 고려 시대 것이다. 표면의 제한된 공간으로 해서 장식 문양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Simple is Best.라는 말처럼 간단한 양식에서 이토록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경의에 가깝다는 것의 나의 의견이다.
금고 몇 개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통 6년명 금고(咸通六年銘金鼓) 함통 6년은 신라 경문왕(景文王) 5년 (865)이다. 표면에는 여러 줄 동심원(同心圓)을 그렸을 뿐 문양이 없고, 측면에는 중심에 굵은 줄을 치고 줄 위에 고리 3개가 달린 간단한 형식이다. 간소하면서도 품위가 있고 고려 시대 금고의 하나의 모본이 된 듯하다. 대정 19년 금고(大定十九年銘金鼓) 표면을 동심원으로 4 구로 나누고 중심에서부터 연밥(蓮子), 연꽃(蓮花), 풀(草), 당초(唐草)의 순으로 문양이 양각되었다. 측면에는 중앙에 굵은 줄을 쳤고 줄 위에 고리 3개가 붙고 한쪽에는 명문이 있다. 명문의대정(大定) 19년은 명종(明宗) 9년 (1179)이다. 포계사 금고(淸溪寺金鼓) 표면을 동심원(同心圓)으로 4구로 나누고 중앙에는 연밥(蓮子)을, 다음에는 연꽃(蓮花」을, 하나 걸러 외주(外周)에는 비운(飛雲)을 각각 양각(陽刻)하였다. 측면은 융기선(隆起線)으로 좌우로 나누고, 고리 2개가 붙었고 명문이 음각(陰刻)되었다. 명문에는 〈泰和二年〉, 〈淸溪寺新造盤子〉 등의 문구가 있어 신종(神宗) 5년 (1202)에 포계 사용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정우 5년명 금고(貞祐五年銘金鼓) 이 금고는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安城郡二竹面) 봉업사(奉業寺)터에서 발견된 것인데, 지름 61 cm 로서 대작에 속할 뿐 아니라 형식도 약간 다르다. 표면을 동심원으로 3 구로 나누고 중앙에는 연밥을, 그 주변에는 연꽃을 양각하여 두 구(區)를 채우고 넓은 외주(外周)의 공간에는 주연에 붙여서 여의두문(如意頭文)과 그 안으로 비 운문(雲文)을 배치하여 전체가 시원스러워 보인다. 측면에는 고리 3개가 있고 명문에는 〈貞五年〉, 〈竹州奉業寺) 등의 문구가 있어 고종(高宗) 4 년 (1217)에 만들어 봉업사에 소속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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