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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

같은 듯 다른 정병과 보탑의 비교

by 뉴갓머니$ 2022. 4. 15.

같은 듯 다른 정병과 보탑의 특이한 형식과 특징을 비교 분석해보자.

같은 듯 다른 정병과 보탑의 비교

우선 정병(淨甁)을 비교해보자.

정병은 속에 항상 물을 담아 두었다가 손을 깨끗이 하는 데사용하는 불구(佛具)의 하나이다. 정병이 어떠한 형태로부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정병의 형태가 밑에 굽이 달리고 한쪽에 물이 나오는 구멍이 있는 점은 주전자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병의 상부가 높이 연장되고 중간에 넓은 마디가 있는 형식이 특이하다. 이러한 형식의 정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시대에는 금속(金屬)으로 또는 청자(靑瓷)로 상당히 많은 수가 제작되었던 듯하다. 또 표면에는 금속제이든 청자이든 문양을 상감(象嵌)하는 형식도 유행하였다. 그중 가장 우수한 작품이 청동 은입사 포류 수금 문 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삽도 57)이다. 이 정병은 전형적이고도 아름다운 형태이고 굽, 귀때의 마개, 병 목의 넓은 마디는 은으로 씌워서 그릇 전면에 나 있는 아름다운 파란 녹색과 대조를 이루었다. 병 몸체 표면에는 전원(田園)의 풍경이 은으로 상감되었다. 넓은 물가에는 언덕이 있고 멀리 산도 보이며 물에는 갈대가, 언덕에는 버드나무가 서 있다. 물에는 오리가 떠 있고 멀고 가까이에 기러기가 날고 있다. 물에는 고기잡이 배가 떠있고 언덕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있다. 몸체 아래위에는 두문(如意頭文)을 돌리고 목에는 점점이 구름무늬가 있으며 귀때에는 연꽃 등을 모두 은상감(銀象嵌)으로 장식하였다. 또 마개와 목의 턱에는 당초무늬가 투각 되어 정교한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이 정병은 고려 시대 금속공예의 극치를 보여 주는 걸작이며 11세기 고려 문물이 가장 발달되었을 때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 보탑(寶塔)을 비교해보자.

삼국시대 이래의 유적 (遺蹟)이나 석탑(石塔) 속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다. 토제(土製) 또는 석제 (石製)의 소형 탑이 발견되는 점, 또는 왕왕 금속제의 공예 탑(工藝塔)의 파편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고려 시대 이전에도 공예적인 소탑(小塔)이 제작되었을 것이 짐작되나 완형품(完形品)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게작된 완형품의 형식으로 미루어 기본형은 동일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고려 시대의 금동제 소탑은 목조 다층 누각(木造多層樓閣)의 형식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고 또 기본적인 형태이기도 하며 약간의 장식성이 가미되어 이 시대의 석조 탑의 형식과도 상통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보탑을 예로들면 다음과 같다.

청동 다층 소탑(靑銅多層小塔)은 가장 완전하고 또 아름다운 탑이다. 기단(基壇)은 고려시대 석탑과 유사하고 주위에 난간을 돌렸다. 초층 탑신(初塔身)은 높고 중앙이 개방되었고, 난간을 돌린 다음 난간 안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배열 하였으며, 한쪽에는 높은 계단이 붙어 있다. 옥개(屋蓋)에는 밑에 공포(共包)가 모각(模刻)되었고 위에는 기와골이 표현되었으며 추녀 끝에는 용머리가 장식되었다. 2층 이상은 차츰 체감(遞減)되면서 11층까지 올라갔으나 각 층의 형식은 동일하다. 정상에는 상륜부 59. 金銅大塔(相輪部)가 완존(完存)한데 세부의 형식을 정밀하게 표현하였다. 현고(現高) 74. 5 cm 이다. 다음 금동대탑(金銅大塔)(湖巖컬렉션)은 현고 1. 55 m의 대형 탑이다. 밑에는 불단형(佛壇形)의 기단이 있고 안상(眼象), 연화(蓮花), 연주(聯珠) 등의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초층 탑신에는 난간을 돌리고 탑신에는 철문, 창살 등이 모각되었다. 옥개에는 기와골이 표현되고 추녀 끝에는 풍령(風鈴)이 달려있다. 2층 이상은 탑신의 높이가 얕아졌고 옥개석은 동일한 형식으로 체감되었다. 현재의 2층에는 각 면에 4구의 불상을, 3층과 4층 탑신에는 3구를, 5층 탑신 양식과는 다르다. 초층 이상의 탑신에는 난간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으며 옥개석과 탑신과의 넓이 가맞지 않는 것이 있어 탑신과 옥개석의 일부가 없어진 듯하며 원래는 이보다 훨씬 큰 탑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상륜부도 완전하지 않으나 표현 수법은 매우 정교하고 전면에 아직도 도금이 많이 남아 있다. 이렇듯 완전히 서로 다른 금속 공예 작품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못해 경외감마저 드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실로 어메이징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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