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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

불력의 힘으로 외침을 막으려 했던 석탑

by 뉴갓머니$ 2022. 4. 13.

불력의 힘으로 외침을 막으려 했던 분황사 석탑과 감은사지 3층 석탑과 그 사리기를 알아보자.

불력의 힘으로 외침을 막으려 했던 석탑

가장 먼저 알아볼 것은 분황사 석탑 사리장엄구다.

앞으로 중요 장엄구를 열거하면서 설명을 가하기로 한다. 분황사 석탑(芬皇寺石塔) 사리장엄구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 (634)에 완성되었다. 따라서, 이 절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 모전석탑(塼石塔)의 건립도 이 무렵의 건립으로 보아 대차 없을 것이다. 이 탑은 창건후 몇 차례 수리를 거친 듯하며, 조선조 중엽에 다시 수리 가있었으나 잘못하여 반 이상이 헐어졌다고 한다. 최근의 수리는 1915년에 있었고 석재(石材)의 부족으로 수리 전의 모양대로3층까지 다시 축조(築造)하였다. 이 때 제 2층 탑신부(塔身部)중앙에서 석함(石函)이 발견되었고 석함에는 뚜껑이 있고 몸과 뚜껑에 각각 방형(方形) 구멍이 있어 이곳에 사리장엄구가안치되어 있었다. 사리장엄구는 은함(銀國)에 담긴 5립의 사리를 중심으로 잡다한 물건이 장치되었는데 불교와 직접 관계 되는 것은 거의 없다. 곡옥(曲玉)을 비롯한 옥류(玉類)는 왕왕 고분(古墳)에서도 발견되는것 들이고 작은 방울,금제 귀걸이들은 장신구로 사용하던 물건들이고, 가위·금바늘은 바늘·바늘통·실패 등은 여자용품이고, 요패(腰佩)로도 볼 수 있는 투각 문양(透刻文樣)이 있는금동제품도 일종의 장신구로 생각되며, 용도를 알 수 없는 패제품(製品)도 있으며 특히 상평 오수전(常平五銖>錢)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사리장엄구의 종류 가운데는 많은 장신구가 있고 특히 주로 여자가 사용하는 바늘 ·가위·침통 등의 물건이 들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석탑 완성과 동시에 선덕여왕이시납(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게 했고, 고려 시대에 사용하던 돈이 들어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때에 해체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하튼 분황사 탑의 사리장엄구는 삼국시대의 일괄 유물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감은사지 3층 석탑(感恩寺址西三層石塔)의 의의.

감은사는 신라 신문왕(神文王) 2년 (682)에 준공된 절이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졸지만 안았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애니웨이, 이보다 앞서 신문왕의 아버지인 문무왕(文武王)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하고,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동해(東海)의용이 되고자 하여 그 뜻을 지의 법사(御義法師)에게 밝힌 내용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다. 그리하여, 유언에 10 일이내에 화장하여 동해에 묻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리라 하였고, 한편 동해 가까이에 절을 지어 불력(佛力)에의하여 외적을 막고자하였다. 이것이 곧 감은사의 착공이고 완성하기 전에 돌아감에 아들 신문왕이 계속하여완성하였다. 그렇기에금당(金堂) 마루는 돌로 깔고 밑은 공간이 이되어 조수(潮水)가 금당 밑까지 들어올 수있도록 특수한 설계를 68. 恩寺址三石塔舍利具하였으니, 이는 동해에 살고 있을 용이 된 문무왕을 생각했던 까닭이다.

이 절에는 금당 앞에 거대한 석탑 2 기(基)가 동서로 서 있다.

1960년에는 그중 서탑(西塔)을 보수하게 되었다. 이때에3층 탑신(塔身)에서 창건 당시에 장치한 사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는 사리기(舍利器)와 그것을 넣었던 감(龍)으로되어 있다. 감은 아래가 부식되는 등 손상이 많으나 밑에 네개의 발을 달고 사면에는 각각 생령좌(生靈座)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여 붙였고, 그 좌우에는 귀면(鬼面)문고리가 있고, 네 귀에는 꽃이 장식되었다. 뚜껑은 방추형(方錐形)이고 중앙에 있는 보상화문(寶相華文)을 중심으로 대각선 문양대 (紋樣帶)를 치고 삼각형을 이루는 공간에는 연꽃 위에 날개를 펴고 서 있는 새 한 마리씩이 조각되었다. 이 속에 있던 사리기는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밑에는 불단(佛壇)같이 생긴 기단이 있는데, 여기에는 연꽃 · 안상(眼樂) 등이 조각되었고 안상은 부각되어 그 안에 팔부중상(人部衆像)을 따로 만들어 안치하였고, 기단 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중앙에는 위를 연꽃과 화염 보주(寶珠)로 장식한 복발형 (검形) 뚜껑이 있어 사리병은 그 속에 있고, 그 주위에는 네구석에 1구()씩의 주악 천인상(樂天人)을 따로 만들어 배치 하였다. 기단 위 네 귀에는 각각 기둥을 세우고 보개(寶蓋)를 덮었는데, 아깝게도 부식이 심하여 거의 원형을 남기지 않았다. 보개는 2중으로 되었고 양각·투각의 수법을 이용하여 연꽃·보상화(寶相臣)·비천(飛天)·귀면(水面)·새 등을 조각하고 여러 줄 수식(佛)이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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