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 언급하는 금속공예 작품들은 다방면에서 검토되고 연구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는 귀중한 자료이다.
광주서 5층 석탑(光州西五層石塔) 사리장엄구. 광주 시내에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동서로 2기의 석탑이 있다. 물론 소속 사원(寺院)은 달랐을 것이고, 이 서 5층 석탑이 있는 부근은 성거 사지(聖居寺址)라고 전한다. 이 석탑을 1961 년 해체 수리하였던바 제2층 탑신(塔身) 중앙에 방형 사리 공(方形舍利孔)을 파고 그 안에 전각형 사리기 (殿閣形舍利器)와 동경(銅鏡), 경문(經文), 각종 옥(玉)이 장치되어 있었다. 사리기는 불단형 기단(佛壇形基壇) 위에 난간을 돌리고, 난간 안에 맞도록 방형 탑 신형의 함(函)을 올려놓고 사 모형의 뚜껑을 덮었으며 기단 중앙에 사리합(舍利盒)이 안치되어 있었다. 기단에는 2단의 받침이 있고, 그 위 중간부 사면에는 고식(古式)의 안상(眼象) 1 구(區)씩이 있으며 갑석(甲石) 상면에도 2단의 받침이 있다. 갑석 사우(四隅)에는 각각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따로 만들어 붙였고, 높은 난간에는 중앙에 기둥모양의 금구(金具)를 세우고 그 좌우에 보상화문(寶相花文)에서 변형된 여의두문(如意頭文)이 투각 되었다. 탑신부는 뚜껑과 붙어 있으며 네 귀에는 주형(柱形)이 각출(刻出)되었고, 각면 중앙에는 보살상 1구씩을 따로 만들어 붙였다. 사모형 지붕 추녀에는 각각 3개씩 영락(路)을 달고 전각(殿閣)에는 풍령(風鈴)을 함께 달았다. 지붕 위에는 추녀 끝에 연꽃을 만들어 붙였고 정상(頂上)에는 네 잎 연꽃 위에 연화 보주(蓮花寶珠)가 높게 달려 있다. 이 탑신을 들면 속에 은제 사리호(舍利壺)가 이중의 연화좌(蓮花座)에 싸여 안치되어 있다. 사리 호의 장식 문양은 많지 않아 보주형(寶珠形) 꼭지 주변에 연주문(聯珠文)이 있고 뚜껑 구연부(口緣部)에 톱니무늬가 있을 뿐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동경(銅鏡) 한 장이 동시에 발견된 점이다. 동경의 형식은 일반 통 식을 따르고 장식 문양도 없으나 사리장엄구로서 동경이 발견되는 일은 매우 드물어서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법주사 팔상전(法住寺相殿) 사리장엄구의 특징과 역사.
법주사 팔상전 사리장엄구 85가 사리장엄구는 금동제로서 석탑 자체나 사리장엄구의 제작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사리장엄구의 보존은 양호하고 석탑 건립 당시에 안치한 원상이 잘 보존되어 있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그 건립 연대가 임란(壬亂) 이 후이지만 목조탑(木造塔)의 양식을 계승한 건축물로서 1968년 이 건축물의 전면 해체 보수가 이루어지자 사리장엄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연 심주(心柱) 밑 초석(礎石)에는 사리 공을 파고 장엄구를 장치하였고, 사리공 네 벽에는 동판(銅板)이 있었고 위도 동판을 덮어 마치 사리 외함같이 보였다. 이 동판에는 모두 명문(銘文)이 있었고, 그중에 만력(萬曆) 24년 정유(丁酉)(1597) 9월에 왜인(倭人)이 모두 태워 을사(乙巳)년 (1605)에 고주(高柱)를 세웠다는 부분이 있고, 끝에 〈朝鮮國僧大將裕淨比丘)라고 있어 임란에 탄 것을 사명대사(四大師)가 재溟재건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불교 신앙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이 사리공 속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중에는 금속제품으로 은제 사리호(銀製舍利壺)와 금동 연화문 환형 구(金銅蓮花文環形具)가 주목되었다. 사리호는 굽 주변에 두들겨서 연꽃잎 무늬를 내고 몸에는 연당초문(蓮唐草文)과 무늬의 경계선에는 권점 문대 (圈點文帶)를 돌렸다. 뚜껑에는 꼭지를 중심으로 사화 문(四花文)을 연속해서 돌렸고, 꼭지에는 연꽃잎으로 싼 호박을 박았다. 여러 겹의 보자기에 싸여 있었던 탓인지 은의 산화(酸化)가 적어 원형을 잘 남기고 있다. 환형 구는 마치 중국 고대의 벽(壁)과 같은 형태인데, 둥근 청동판(靑銅板)에 가운데 구멍을 내고 주위에 연당초문을 두들겨 내서 장식하였다. 이를 금속 제품의 문양은 조선시대 문양의 특징을 잘 나타내어 시대성을 볼 수 있는 점은 많은 참고가 되었으나, 고려 이전의 사리장엄구가 호화찬란한 데 비하면 내용이 빈약하고 사리합(舍利盒)을 쌌던 비단 보자기에는 개인적인 염원 문(念願文)을 한글로 묵서 한 점으로 봤을 때 불교 신앙의 양상이 엿보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금속공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시대적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 (0) | 2022.04.14 |
---|---|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우수한 조형적 작품 (0) | 2022.04.14 |
한반도 금속 공예 기술의 걸작 (0) | 2022.04.14 |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사리장엄구 일화 (0) | 2022.04.13 |
한국 공예술의 발달상 고찰 (0) | 2022.04.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