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공예

고려시대적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

뉴갓머니$ 2022. 4. 14. 10:55

아직도 고려시대 불상 양식과 특징이 남아 있는 시대적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알아보자.

고려시대적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

도리사 석종(桃李寺石鐘) 금동 사리기

사리기 안에는 다시 원통을 안치하고, 그 안에 사리 용기 (舍利容器)를 넣었다. 이 원통과 함께 발견된 청동 바리에는 〈洪武二十四年)의 연기(年記)와 조선 태조 이 성계(李成桂)가 시납(施納)한 사유를 기록한 명문(銘文)이 있다. 따라서, 이 일련의 사리기는 조선조 개국 1년 전인 1391년에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이 유물은 강원도 금강산 월출봉(月出峰)에서 발견되었다. 사리기 자체는 은을 두드려서 만든 듯하며, 그 과정에서 문양도 동시에 새긴 듯하다. 도리 사에는 〈世尊舍利塔)이라고 각자 한 석종형 부도(浮屠) 1기가 전한다. 이 사리탑은 조사자의 의견을 따르면 17세기 중기의 조성(造成)이며, 사리기는 탑 하단에 사리 공을 파고 그 안에 봉안한 다음 석회로 밀폐하고 뚜껑을 덮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리기는 원래 석적 사(石積寺)에 있었으나 제사(廢寺)가 되어 사지(寺址)에는 불사리탑(佛舍利塔)만이 있었으나, 동리 사람에게 현몽(現夢)하는 바가 있어 새로 사리탑을 만들어 도리사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리기는 금동 6각의 원당형(圓堂形)이다.

밑에는 얕은 6 각기 단(六角基壇)이 있고, 각 면에는 고식(古式)의 안상(眼象) 1 구(區)씩이 투각(透刻)되었다. 사리기 신부(身部) 각 면에는 보살상 2구와 사천왕상(四天王像) 4구가 선각(線刻)되었고, 뚜껑에는 기왓골 없이 마루가 두드러졌고, 그 끝에는 귀꽃이 높이 솟아 있다. 귀꽃과 추녀 중간에 각각 고리가 달려 있음은 혹 영락(略)을 장식하였던 자리 인지도 모른다. 뚜껑 정상에는 여섯 잎의 연꽃이 장식되었고, 그 위에 꼭지가 있었을 법하나 지금은 볼 수 없다. 이 사리기는 도금 색(錢金色)이 찬란하고 형태,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8세기경의 제작으로 추정되는 우수작이다. 8세기에 제작된 사리기가 17세기에 제작된 사리탑 속에 안치되었던 경위는 앞에 말한 바와 같으나, 하나 납득이 안 가는 점은 도리사로 옮기기 전에 이 사리기를 봉안하였던 석적사의 사리탑의 형식과 그 행방에 관해서이다. 이 점이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생각에 늪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갑자기 사리탑 형식이 행방 불명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직접 조사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의 심정이 이랬을까?

강원도 출토(江原道出土) 금동 사리탑

이 사리탑은 1958년경 소재 미상(所在未詳)의 석탑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할 뿐, 그 밖의 사실은 전혀 알 수 없다. 이 사리탑은 속이 비어 있어 외호(外護)의 성격을 띤 것이다. 전체의 외형이 밑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졌고, 기단 ·탑신·상륜의 각부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라마탑(喇麻塔)의 형식을 따르고있음을 일견 해서 알 수 있다. 기단은 거의 원추형(圓形)을 이루었고 중간에 앙련(仰運)과 복련(火運)을 간석(間石) 없이 연결하여 그 접속 부위(部位)가 잘록해졌고, 그 위에 구형(球形)의 탑신부가 있다. 기단과 탑신부에는 원권(圓圈)이 일자로 연속되기도 하고 연주문(聯珠文)이 수식(垂飾)같이 늘어지기도 하였다. 탑신 위에는 얇은 동판(銅板)이 있는데, 그 형식이 두출 성형(斗出星形)이어서 저 원(元) 나라 사람이 건립하였다는 경천사 석탑(敬天寺石塔)의 기단 평면과 동일한 점은 주목된다. 이 위에는 원추형(圓鐘形)이 놓였는데 표면에는 융기 횡선(隆起橫線)이 중첩되었고, 귀꽃이 장식된 보개(寶蓋)와 2단의 보주(寶珠)가 차례로 얹혔다. 이 사리탑이 원대(元代) 라마탑 형식인 점은 금강산을 중심 한 지역에서 발견된 사리기나 불상에서 원대 양식이 나타나는 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며, 고려 하대(下代)에 있었던 원 왕실(元王室)의 금강산 숭앙의 사실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강원에서 출토되는 작품은 희귀하기도 할뿐더러 그래서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