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공예

한반도 금속 공예 기술의 걸작

뉴갓머니$ 2022. 4. 14. 00:35

한반도 금속 공예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들을 알아보자.

한반도 금속 공예 기술의 걸작

문화 예술 보존의 중요성.

송림사 5층 전탑 사리장엄구 79가 사리기는 아직까지 볼 수 없었던 형식이며 전체가 입체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 곳곳에 푸른 녹이 나 있으나 아직도 도금 색이 많이 남아 있고, 특히 밑의 연화대는 아직도 금색이 찬연하다. 이 우수한 사리 외함이 장치되었던 탑을 알 수 없고 함 속에 장치되었을 내용물도 볼 수 없음은 애석한 일이다. 송림사는 행정 구역으로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漆谷郡東明이지만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 절에는 5 탑이 있어 주목되어 왔고, 1959년 해체 수리되어 그때 제2층 탑신에 해당하는 위치에 거북 모양의 석함(石函)이 들어 있었고, 사리장엄구는 이 석함 속에 안치되어 있었다. 이 이석함에는 방형 구멍이 있어 그 안에 전각형 사리기(殿閣形舍利器)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장엄구가 안치되어 있었다.

당시의 금속공예 기술의 발달상을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

전각형 사리기는 금판(金板)을 오려서 구성하였는데, 밑에 넓은 받침이 있고 그 위에 단판(單舞) 연꽃의 모양을 오려서 중판(重瓣) 형식으로 겹겹이 못으로 고정시켰다. 이 위는 다시 얕은 받침이 있고 그 위에 난간을 돌렸는데, 각 면에 세 개씩의 동자주(童子柱)를 세우고 투각 문양(透刻紋樣)으로 장식되었다. 난간 안쪽 네 귀에는 기둥을 세워 뚜껑을 받치고 있는데, 중앙에는 역시 금판을 오려서 만든 큰 연화대가 있고 그 위에 유리 컵이 얹혀 있다. 유리컵은 녹색을 띠었고 표면에는 드문드문 유리로 만든 고리를 붙였는데, 이러한 유리 제품은 발견례가 매우 드물다. 유리컵 속에는 역시 녹색의 사리병이 안치되었고 마개도 유리로 만들어 막았다. 보개(寶蓋)는 이중인데, 네 모서리에서 수식 (垂節)이 늘어졌고 추녀에는 여러 개 영락(路)이 달려 있다. 여기서부터 상면은 위로 확대되었고 투각 문양 · 점선문(點線文) 등으로 장식하고 사면에 연꽃잎 하나하나를 오려서 드문드문 붙였다. 도금 색(渡金色)이 극히 양호하게 남아 있어 표면이 찬란하고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된 점은 희한하다. 이 사리기와는 별도로 은제 도금 수지형 장식구(銀製鍍金樹枝形裝飾具) 1, 동제 도금 원형 금구(銅製鍍金圓形金具) 2, 은제 소환(銀製小環) 15, 옥류(玉類) 다수, 향목(香木) 등이 발견되었다. 그중 나무 모양의 장식구는 아직까지 이러한 형식의 유물이 발견된 일이 없어 주목을 끌었다. 중심 줄거리에서 대칭으로 여러 가지가 뻗었고, 끝은 모두 보주형(寶珠形)이 되었다.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사리장엄구 81었으며, 이 전체를 중심에서 약간 접어서 모를 내었다. 밑뿌리는 뾰족해서 어떤 물체에 꽂았던 듯하나 용도를 알 수 없다. 원형 금구(圓形金具)는 양면에 동심 원권 (同心圓圈)을 가늘게연속해서 돌렸는데, 이러한 유물이 경주 분황사(芬皇寺) 탑에서도 발견되었다. 혹 법륜(法輪)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일련의 장엄구는 형식으로 보나 보존 상태로 보나 매우 귀한 유물이다.

익산 왕궁리 5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 사리장엄구 특징.

익산은 백제의 별도(別都)로 지목되는 곳이고, 탑이 있는 부근의 지명이 왕궁리 (王宮里), 고도리(古都里) 등으로 불리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곳이다. 이곳에 부여(夫餘) 정림사지(定林寺址) 5층석탑의 형식을 모방한 5층 석탑이 서 있어 일찍
부터 주목되어 왔다. 이 석탑은 언제부터인지 기단부(基壇部)가 흙으로 덮여 있어 그 구조를 알 수 없었으나, 1965년 해체 수리가 이루어져 기단 구조가 밝혀짐과 동시에 제1층 옥개석(屋蓋石) 상면에 두 개, 기단 밑 심초석(心礎石) 위에 세 개의 사리공(舍利孔)이 있어 각각 귀중한 사리장엄구가 장치되어 있었다. 탑신부 사리 공에서는 금제 사리 합(舍利益), 유리제 사리병과 이것을 넣었던 금동 사리 외함(舍利外國), 그리고 금제 금강경판(金剛經板)과 이것을 넣었던 금제 내함(內函)과 금동제 외함이 있었고, 기단 사리공에는 동조 여래입상 (銅造如來立像)과 방울이 있었다. 사리병은 녹색을 띠었고 금제 연봉으로 마개를 막고 밑에는 병이 안전하게 놓이도록 금제 앙련대좌(仰蓮臺座)가 마련되었고 그것들을 금제 내함 속에 넣었는데, 내함 뚜껑과 몸에는 연주 문대(聯珠文帶)를 돌리고 그 안 공간에는 연꽃을 각각 음각하였으며 이것을 다시 외함 속에 넣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유품은 금제 금강경판(金剛經板)이다. 이 경판은 총 19 매로서 길이 14.8 cm, 폭 13.7 cm의 금판을 이용하여 한 장에 17 행, 매행 17 자의 경문을 목판 같은데 글자를 새긴 다음 그 위에 대고 두드려서 글자를 찍은 듯하다. 각 장은 아래위에서 작은 경첩으로 연결하여 연속해서 펼 수 있게 되었고 다시 가는 금판 띠로 묶게 되었다. 이 금판은 금제 내함 속에 넣게 되는데, 이 내함 표면에는 장식문양이 없으나 뚜껑 중앙에는 이중으로 연꽃을 새기고 고리를 달아서 손잡이를 만들고, 이 내함을 다시 금동 외함에 넣었다.